2026-09-09T13:18:48.167+00:00 · 주일예배 메시지
2026년 마태복음 21강 "네 믿음이 크도다"
2026년 마태복음 21강 "네 믿음이 크도다"
2026년 마태복음 21강 "네 믿음이 크도다"
말씀/ 마태복음 15:1-28 요절/ 마태복음 15:28 2026. 9. 6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더러움을 없애고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 때에 예루살렘 공회로부터 파견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 씻는 전통을 어긴 것을 보고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당시 ‘빵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전통’은 유대인이라면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전통을 지키지 않고 파괴한 것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통을 범한 것을 공동체를 허무는 심각한 문제로 여겼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어떻게 지적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전통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통을 앞세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고르반 전통으로 십계명 중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와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는 계명을 어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고 하면 부모에게는 물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침으로서 부모 공경의 계명을 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며 이사야 말씀이 그들에 대해 잘 예언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29장 1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하면서 많은 전통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고르반 전통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장로들의 전통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 먹기, 소감쓰기, 일대일 성경공부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좋은 것들이지만 이런 잣대를 가지고 신앙을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헌금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과 소감쓰기와 일대일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기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에 매이는 것은 율법적이 되게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삶으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함으로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무리를 불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들이 바리새인들의 나쁜 영향력 가운데 있었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도 참된 가르침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듣고 깨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었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하지만 예수님은 거침없이 대답하십니다.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여기서 ‘그냥 두라’는 것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지 않는 가라지는 언젠가는 뽑힐 것이니 그냥 두면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적 소경으로서 영적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고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더러움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확실히 알고 싶어서 예수님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책망하시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기 때문입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을지라도 배로 들어가 소화되고 배출되기 때문에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진짜 문제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말과 행동입니다. 말과 행동은 인격의 표현입니다. 말과 행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우리 마음에 좋은 것들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 마음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으로 가득합니다. 일곱 가지를 언급하셨는데 악한 생각은 뒤에 나오는 죄들의 뿌리인 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여섯 가지입니다. 이는 십계명 중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 계명을 어긴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뗄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고, 진정한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마음에 있는 악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중언, 비방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우리를 더럽게 합니다.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손 씻기보다 더 중요한 것, 마음 씻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악한 것들이 나오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더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무엇으로 씻을 수 있습니까? 시편 119:9은 말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또한 디모데전서 4장 5절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거룩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씻어주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은 그리스도 피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마암은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히9:14) 우리가 날마다 주님 십자가 앞에 나의 죄를 들고나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음으로 거룩함과 의로움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서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소리 질렀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이방인 여인으로서 유대인들이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더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귀신 들린 딸 문제로 예수님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녀는 예수님을 주님이요 다윗의 자손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흉악하게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냉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간절한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여인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얼른 그녀 문제를 해결하사 보내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심 받은 목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냉대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절하며 간구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더 심한 말을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자녀의 떡은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 이스라엘에게 주는 복음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자녀의 떡은 이스라엘의 몫이기 때문에 개들에게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여인을 개로 취급하셨습니다. 여인은 ‘뭐요 내가 개라구요’ 하며 미친 개처럼 물거나 ‘내가 이방인 주제에 뭘 바랄 수 있겠어’ 하며 운명주의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주님, 옳습니다”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하면서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녀에게는 포기가 없었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만 주셔도 딸의 병이 나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것은 여인의 믿음에 감동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간청을 즉시 들어주지 않고 침묵하고 거절하신 것은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테스트에 여인은 합격했고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포기치 않는 믿음입니다. 어떤 난관 앞에서도 믿음을 포기치 않고 믿음을 지키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침묵과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병으로 고통하는 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하든지 딸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어떤 수모도 견뎌내고자 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딸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큰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 그녀의 딸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병으로 고통하는 딸을 살렸습니다. 딸이 고침 받고 살아날 때, 엄마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할렐루야 찬양하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절박한 문제를 들고 주님께 나아가 부르짖는데도 주님께서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허공을 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많은 사람들은 기도해도 소용없다며 기도를 중단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침묵도 기도 응답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십니다. 당장 응답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키워주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병으로 고통하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저의 동생은 암으로 인해 빼빼 마르고 신장까지 나빠져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으니 저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생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믿고 기도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가을학기 되어 캠퍼스 땅을 밟았습니다. 토요일에는 정이삭 목자가 함께 동참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는 것 같이 힘이 났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캠퍼스를 맡기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양을 먹이는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박함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한 양을 붙여주시고 천국 백성 삼아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외모나 인간조건을 보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십니다. 또한 어떤 흉측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천국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요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외부보다는 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마음은 고급 비누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 열심이나 고행으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그리고 우리의 죄를 들고나가 주님의 피를 믿고 의지할 때, 마음이 깨끗해지고 말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