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T07:21:42.851+00:00 · 주일예배 메시지
2026년 마태복음 26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2026년 마태복음 26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2026. 10. 11
마태복음
제 26 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말씀/ 마태복음 20:1-16 요절/ 마태복음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천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특혜를 입은 사람들입니까?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주권과 나중 되고 먼저 되는 것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천국의 주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가르치시며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를 들려 주심으로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들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습니다. 이 천국 비유는 포도원의 품꾼들보다 포도원의 주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품꾼들은 신자들을, 포도원의 주인은 예수님을, 포도원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터로 나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꾼들을 찾으시는 포도원 주인은 참으로 부지런한 분입니다. 그는 아침 일찍 장터로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하루 12시간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는 이른 아침은 오전 6시이고 일을 마치는 시간은 오후 6시입니다. 일당을 벌기 위해 새벽에 장터에 나왔던 품꾼들은 한 데나리온 받기로 정식 계약을 하고 포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을 겁니다.
포도원 주인은 또 제삼시에 나가 보았는데 그때도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정으로 늦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도 일하고 싶어서 누군가 불러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나타나 그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3시간이나 늦게 왔는데도 포도원에 들어갈 기회를 얻고 또한 상당한 품삯을 약속 받았으니 그들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상당한 품삯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일한 만큼 합당한 댓가를 받게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른 아침에 온 품꾼들 못지 않게 땀 흘리며 열심히 일했을 겁니다.
시간이 흘러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품꾼들을 찾아 나서는 일을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포도원 주인은 정오와 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하였다는 것은 오전 9시에 들여보낸 품꾼들과 같이 상당하게 주리라는 약속을 하고 들여보냈다는 것입니다. 정오에 부름받은 품꾼들은 정식 계약을 맺은 품꾼들에 비해 반절 정도만 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후 3시에 부름 받은 품꾼들은 많이 일해야 3시간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데도 불러 주시고 일하게 하여 주시고 상당한 보수도 약속해 주신 주인에 대한 감사가 너무 커서 일찍 부름 받고 오래 동안 일한 품꾼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을 것입니다.
이제 포도원에 들여 보내는 일은 다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포도원 주인은 제십일시 즉 오후 5시에도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도 장터에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일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장터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놀고 있지만 속이 타들어갔을 겁니다. 그들이 왜 그때까지 놀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일하기 싫어서 하루 종일 게으름 피우다가 꼴찌로 장터에 나왔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몸이 약하고 스펙이 부족해서 경쟁에서 밀려 바닥까지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장터에 서 있었고 그들 인생에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읽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그들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그들의 대답을 볼 때 그들도 얼마나 일하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몸이 약하고 내 놓을만한 자격증도 없고 재능도 기술도 없지만 일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일이라고 해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우와, 참으로 은혜로운 주인입니다. 이렇게 관대하고 자비롭고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을 수가 있습니까? 세상 천지에 이런 주인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오후 5시에 부름 받은 그들은 품삯에 대해 어떤 약속도 받지 못했습니다. 많이 일해야 1시간 정도밖에 일할 수 없기에 그들은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노는 것에 대해 지쳤습니다. 처음에는 노는 것이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노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생활에 대한 염려, 장래에 대한 염려, 가족 부양에 대한 염려가 밀려왔습니다.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불러만 주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었습니다. 운전이나 청소나 경비라도 하고 싶고, 공장 일이나 농사 일 등 가리지 않고 뭐든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에서 일하라고 하니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들은 몸도 약하고 1시간밖에 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나 같이 쓸모 없는 자를 부르시고 포도원에서 일하게 하여주신 주인의 은혜에 감동되어 일분 일초를 소중하게 여기며, 온 마음과 온 힘을 쏟아 부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몰이 되자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품꾼들의 품삯 주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나중 온 자로부터 품삯을 주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먼저 온 자들부터 품삯을 정산해 줍니다. 제십일시 즉 가장 늦게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한 데나리온은 12시간 일한 사람에게 주기로 약속한 품삯입니다. 그들에게는 0.1 데나리온만 주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 일한 사람들에게 12시간에 해당되는 일당 한 데나리온이나 준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파격적이고 놀라운 일입니다. 오후 3시, 정오, 오전 9시에 온 자들도 차례로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먼저 온 자들 즉 이른 아침부터 일한 자들의 차례가 되었는데 그들은 꼴찌로 온 자들이 한 데나리온 받은 것을 보고 자기들은 그들보다 10배 이상으로 일을 했으니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나중 온 자들과 비교하여 그들의 기대치는 높아졌습니다. 그들은 최대 열두 데나리온 최소 두 데나리온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집 주인을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그들은 주인이 품삯 주는 데 있어서 공평하지 않다며 항의했습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과 하루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먼저 온 자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부당하다는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먼저 와서 오래동안 일한 사람들, 그리고 능력 발휘를 해서 큰 성과를 낸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고 많은 보수를 줍니다. 반면에 나중 와서 경력이 짧은 사람들, 능력 부족으로 실적이 미미한 사람들에게는 적은 보수를 줍니다. 이런 보상 체계가 지켜지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원망 불평을 하고 그런 조직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어떠합니까? 주인은 원망 불평하는 한 사람에게 대답했습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왕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경영되고 완성되어 집니다. 먼저 온 그 사람을 예수님은 친구라고 불러 주십니다. 원망 불평했기 때문에 친구가 아니라 나쁜 놈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변함없이 그를 친구로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부름 받은 자들을 친구로 삼으시고 깊은 사랑과 우정으로 대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친구로 대하여 주시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바로 친구입니다. 특히 나이 들어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요 행복인지 모릅니다. 저에게도 수십 년 된 친구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친구라고 불러주시니 예수님도 저의 친구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친구가 된 것, 이것이야말로 힘든 인생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요 놀라운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온 자에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십니다. 친구 사이가 깨어지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의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가고 끝까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약속을 지켜야 하고 존중과 사랑의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라고 하십니다. 나중 온 사람에게는 품삯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았고 포도원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가족의 하루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양식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포도원은 주인의 것이고,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안 들여보내고는 주인의 뜻입니다. 또한 품삯을 얼마를 줄 것인지 정하는 것도 주인의 권리입니다. 품꾼이 주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품꾼은 주인이 불러 주지 않았다면 실업자로 남아 있을 겁니다. 품꾼은 포도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약속한 품삯을 받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무엇보다 친구로 불러주시고 소중한 존재로 대우해 주신 그 크신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평생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은 주인의 권리에 대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은 포도원이 내 것이요 품삯으로 주는 돈도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인은 포도원과 돈이 자기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떻게 할지는 주인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도원 주인이 독재자처럼 악한 분이 아닙니다. 포도원 주인은 비유에서 살펴본 대로 선하십니다. 문제는 세상적 관점에서 주인을 바라보기에 악한 분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오래 동안 일한 사람들, 능력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보수를 주고 시간제로 짧게 일한 사람들,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적은 보수를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예수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보상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나중 되고 먼저 되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예수님은 영생에 대한 말씀의 결론으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심으로 먼저 된 자들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한 자들이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는 나중 된 자들도 귀히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고, 먼저 된 자들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림으로 원망 불평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저의 인생을 돌아볼 때 나중 된 자에 해당되기도 하고 먼저 된 자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 1학년 가을에 성경공부에 초청되었지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만난 것은 UBF본부 예배에 나간 지 5년 후였습니다. 그리고 81년 2학년으로 복학하자마자 일대일 양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함으로 종로3부와 서울시립대의 조상이 되었으니 먼저 된 자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고시 패스와 좋은 직장을 잡아 사회 진출을 하였지만 저는 폐결핵이 재발되어 세상과 격리되어 지내야 했습니다. 투병 기간에 성경통독과 기도로 치유의 은혜를 받고 졸업과 동시에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전임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0년간 서울캠퍼스 사역과 세종센터 개척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94년 가을에 춘천으로 목장이동이 되어 매주 주일메시지를 섬기며 강원대와 한림대와 교대와 한림성심대 청년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년 음력 1월 14일에 저의 나이 만 70세가 됩니다. 저는 이제 연말에 전임목자직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모세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평생 말씀역사를 섬기며 맡기신 영혼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책임을 내려놓으라는 주님의 뜻을 따라 리더십을 황사무엘 목자님에게 이양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말씀과 요한계시록 말씀은 마지막 장까지 섬길 것입니다. 사무엘서 공부는 후임자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내년부터는 잠시 자비량하며 가족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자 합니다. 저는 일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3기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할 때 두려움이 크게 밀려 왔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안 해 본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어깨와 허리와 무릎 등 모든 관절에 통증이 생겼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붙들고 물질의 산을 옮기고 두려움의 산을 옮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힘차게 전파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부르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복음역사에 헌신한 자들이 원망 불평에 빠지는 것은 비교의식과 자기 의 때문입니다. 비교의식과 자기 의는 주권신앙이 부족할 때, 그리고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 슬그머니 들어옵니다. 천국의 왕은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은 그 뜻대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부르시고 쓰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은혜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충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