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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4T12:23:33.895+00:00 · 주일예배 메시지

2026년 마태복음 25강 "영생을 얻는 길"

2026년 마태복음 25강 "영생을 얻는 길"

2026. 10. 4 마태복음 제 25 강 영생을 얻는 길 말씀/ 마태복음 19:16-30 요절/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생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허무와 절망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음으로 영생을 얻고 행복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 와서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부자 청년이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머리도 좋고 성실하여 세상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젊음과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진 그는 행복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가을이 되자 그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며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밤새우며 책을 읽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떤 병도 낫게 해 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 예수님이라면 시원하게 답을 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만사를 제치고 예수님께 나와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랍비보다 더 유능한 선생님으로 보고 한 수 가르침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질문이 잘못되었기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선한 일이 무엇인지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아시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한 인간이요 위대한 선생님으로만 보았습니다. 영생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 있고 그 분만이 무엇이 선한 일인지 아닌지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행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시각을 바꾸어주시기 위해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오경은 영생 즉 생명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다 지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계명과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에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계명들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인간의 선한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로 오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어느 계명입니까?’ 하며, 계명 지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십계명 가운데 인간에 대한 계명 다섯 가지와 그 다섯 가지를 요약한 한 가지를 더하여 여섯 가지 계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계명들, 제일 계명부터 제사 계명까지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당시 율법선생들이 신앙과 윤리를 분리시켜 하나님께 대한 신앙만을 강조하고 삶에 대한 가르침은 경시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르반 유전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즉 고르반이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부모 공경의 의무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신앙과 윤리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의 계명들에 대해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다’고 했습니다. 우와!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들을 다 지켰는데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 모든 계명들을 온 마음으로 지키고자 했다면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계명들을 소극적으로 지키는데서 끝났습니다. 십계명은 대부분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이런 계명들을 그 청년은 문자적 의미로 다 지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을 새롭게 해석하신 바에 의하면 형제에게 분노하고 형제를 대하여 욕하고 무시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또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할 뿐 아니라 부모에게 용돈도 드리고 실제적인 섬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 자신을 돌보듯 이웃을 돌보고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계명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까지 알고 실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결국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연약하고 허물 많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연약함과 한계를 알고 겸손함과 상한 심령으로 예수님께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의가 많은 그에게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길이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온전해 지고자 한다면 먼저 그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적극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며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풀려나올 때 간수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영생을 얻으려면 누구든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듯이 구원에 이르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종교다원주의는 가르칩니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죄와 질고와 상처와 운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구주 예수님께 나오기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부자 청년에게 걸림돌은 재물이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께 나오기 위해서는 재물을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재물을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물질에 대한 탐욕을 회개하는 것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의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저의 경우는 성공에 대한 목마름과 정욕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머리와 노력을 믿었습니다. 폐결핵과 많은 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수년간 병상에 누워지내야 했지만 저의 의지는 꺽이지 않았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사도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없고 나의 더러운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죄인을 주님께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해 주시고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고 캠퍼스 목자요 말씀의 종으로 부르시고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섬기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청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걸림돌인 재물을 처분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재물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는 안타깝게도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몹시 놀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며 이구동성으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부자였습니다. 제자들도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서는 구원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의 선한 행위나 사람의 열심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구원역사는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100%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인간의 공로가 1%라도 더하여 져서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 데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님, 다만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이에 이번에도 베드로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이 땅의 보화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에게 어떤 보상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희생만 하고 아무런 보상도 없다면 힘이 빠지고 의욕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책망하지 않으시고 희생한 제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승리의 주가 되심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영광의 보좌에 앉아 천하 만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예수님 옆에 있는 영광의 보좌에 앉아 예수님과 함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받은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됨으로서 구원과 심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제자들은 이 땅에서도 여러 배 보상을 받고 영생을 상속하게 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이 땅의 보화들을 버렸습니다. 집을 버린 자들도 있었고,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 즉 사랑하는 가족들을 버린 자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전토, 논과 밭과 대지를 버린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보화들을 버림으로서 거지가 되고 망하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버린 것들의 여러 배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육신의 가족을 버린 자들은 더 많은 영적 가족들을 얻게 됩니다. 핍박하던 육신의 가족들도 나의 전도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께 집을 드렸는데 때가 되면 집도 돌려주시고, 주님께 직장을 드렸는데 더 좋은 직장을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결혼을 주님께 드리고 복음역사에 헌신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평생 반려자를 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영생입니다. 부자 청년은 젊음과 부와 권력과 명예와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 최고의 보화인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소유하고 누린다고 하더라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허무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난과 궁핍에 처하고 내 놓을 만한 것이 없을지라도 영생을 얻은 사람은 가슴이 벅차고 기쁨과 행복이 가득합니다. 만 가지가 부족할지라도 영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생은 먼 미래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현재적입니다. 영생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며,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완전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를 때, 다시 말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영생을 얻고 누리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인생 최고의 보화인 영생을 얻게 된 것은 가장 큰 기적이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은혜가 시들지 않고 살아 있고 뜨거운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어떤 일도 해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먼저 된 자들이었습니다. 바돌로메, 빌립, 마태, 도마는 그 다음 된 자들이고 나머지 제자들은 나중 된 자들이었습니다. 먼저 된 자라고 해서 그 자리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나중 된 자라고 해서 끝까지 나중 된 자로 고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순위와 자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존중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성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겸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6) 영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사람의 선한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생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생의 길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는 영혼들에게 나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열정을 드려 생명의 복음을 힘써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