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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3T10:59:38.694+00:00 · 주일예배 메시지

2026년 마태복음 22강 "주는 그리스도"

2026년 마태복음 22강 "주는 그리스도"

2026. 9. 13 마태복음 제 22 강 주는 그리스도 말씀/ 마태복음 16:13-28 요절/ 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냐 멸망이냐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일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위대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로 알고 있습니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도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특별한 시간을 갖고자 북쪽에 있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하신 것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공생애 기간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인물들은 역사에 빛을 발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다가 죽임을 당한 의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우상이 가득한 어두운 시대에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고자 열정을 쏟았던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파했던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1세기 어두운 시대에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백성들을 열정과 눈물로 섬기신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부만을 보고 본질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의 질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하고, 그 분을 세상에 전파해야 할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해 누가 대답했습니까? 시몬 베드로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서 ‘주’는 주님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말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망설이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정답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 위대한 인간을 뛰어넘는 분으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 선지자, 왕이 기름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님이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삼중직을 감당하는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 문제를 들고 나가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선지자요,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이렇게 세 가지 직분을 동시에 감당하는 이는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2). 또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신들이 추앙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통치하고 있던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로 불려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신도 영원히 살아있는 신은 없습니다. 시대마다 신들의 이름이 달라지고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많은 신들을 섬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렸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신은 참 신이 아닙니다. 그런 신들은 인간이 만든 우상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참 신으로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시고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고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은 베드로를 시몬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사도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한 고백을 한 것이 아니라 시몬 즉 보통 사람으로서 고백한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그런 고백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믿고 고백한 시몬 베드로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몬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믿고 고백하게 하신 이는 혈육 즉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의 의지나 열심이나 사람의 지식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를 주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영적 눈과 영적 귀가 열려서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을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시몬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시몬 개인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제자 공동체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신앙고백 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신앙고백이 없는 자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은 생명을 걸고 해야할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신앙고백을 바르게 하는 자가 구원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암투병 하던 저의 동생은 지난 주 화요일에 기력에 쇠하여 마지막 글과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구원 받고 천국으로 간다는 확신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품에 평안하게 안겼습니다. 목숨이 끊어진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 받았느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고백함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이 땅의 수고와 고통을 그치고 가장 좋은 나라, 천국으로 이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희망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신앙고백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고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천국 소망이 있었기에 모든 핍박과 죽음까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신앙고백 하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처럼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5-58) 이제부터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라고 불러주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말씀을 통해 그에게 반석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몬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다”라고 현재형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그를 베드로 즉 반석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축복하실 뿐 아니라 이 반석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반석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반석을 베드로로 보고 베드로를 초대교황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반석을 베드로 개인으로 보지 않고 베드로와 제자들의 신앙고백으로 봅니다. 또한 반석을 그리스도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는 죽음 권세요 사탄 권세로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 권세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 사망 권세를 이기는 하나님 백성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성삼위 하나님이시기에 교회는 거룩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고 모든 영역에서 말씀 충만, 성령 충만, 은혜 충만으로 채워감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이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천국 열쇠는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게 되고,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복음전파를 통해 매고 푸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습니다.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천국 문이 열리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천국 문이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은 그대로 이루어주십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약5:16-18). 가나안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포기치 않고 기도했을 때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 셋째, 우리의 용서를 통해 화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때 서로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은 미움이 지배하고 천국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용서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그 사람을 용서하면 신기하게 내 마음이 치유되고 더 큰 사랑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치적 경제적 메시아로 오해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길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는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습니다. 신앙고백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길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입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여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복음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붙들고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가시는 길을 온 몸으로 막았습니다. 그는 고난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영광의 그리스도만을 고집했습니다. 그토록 능력 많으신 그리스도께서 왜 고난 받고 죽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막고 있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후에 있는 사탄을 보시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나의 길을 막지 말라는 겁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말처럼 사탄의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자 하십니다.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사탄에게 이용당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죽음 당하고 제삼일에 부활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은 그리스도가 고난과 죽음 없이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른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길을 받아들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의 길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자는 눈과 삶의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는 자기 생각과 자기 감정과 자기 의지를 부인하라는 것이며, 말씀 앞에 자기를 쳐 복종시키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감당해야 할 자기 십자가입니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십자가, 아내요 엄마로서의 십자가가 있고, 부모 공경의 십자가도 있습니다. 또한 학사들은 직장의 십자가, 학생들은 공부의 십자가, 알바의 십자가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십자가를 진다면 생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런 십자가를 진다면 사명의 십자가요,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는 아름다운 것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영생을 얻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습니까? 참 생명을 얻는 길은 자기 목숨을 아끼고 이기적으로 사는 데 있지 않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데 있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것이며,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 참 제자의 삶을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신앙고백은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신앙고백 하는 자들은 믿음과 인격이 성장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시련과 유혹 앞에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참 그리스도인이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