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보 2026년 10월 25일 자세히 보기 →
UBF춘천UBF교회

2026-10-25T09:53:46.643+00:00 · 주일예배 메시지

2026년 사무엘상 1강 "기도하는 한나"

2026년 사무엘상 1강 "기도하는 한나"

2026. 10. 25 사무엘상 제 1 강 기도하는 한나 말씀/ 사무엘상 1:1-2:11 요절/ 사무엘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무엘서는 사사 시대의 어둠을 끝내고 새로운 통일 왕정 시대를 열어가는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인간 왕을 갈망했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바탕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왕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은 왕이신 하나님을 떠나 각기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영적으로나 삶으로나 깊은 탄식과 고통이 찾아왔지만, 스스로는 이 어둠에서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대에 하나님은 놀랍게도 군대나 큰 권력자가 아니라, 마음이 상해 통곡하며 기도하는 한 사람을 통해 새 시대의 문을 열어 가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며 수많은 문제와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 아픔을 어떻게 풀고 새 시대를 열 수 있을까요? 우리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진실한 기도가 회복되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참된 위로와 기쁨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엘가나라는 레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은혜’라는 뜻을 가진 한나와 ‘진주’, ‘다산’이라는 뜻을 가진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가족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성막에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엘가나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한나를 사랑하여 다른 가족들보다 제물의 갑절을 더 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슬퍼하는 한나를 위해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위로했습니다. 제물을 더 많이 받아도 남편의 인간적인 사랑과 위로의 말도 한나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브닌나는 한나의 약점을 꼬투리 잡아 심하게 격동시키고 괴롭게 했습니다. 남들은 제사 후 기쁘게 먹고 마시는데, 한나는 서러운 눈물만 흘리며 음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성막 문설주 여호와 앞으로 나아갑니다. 옛말에 "자식 없는 게 상팔자"라는 말이 있고, 요즘도 힘든 육아를 피해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나 역시 단순히 자녀가 없는 서러움 때문이었다면 브닌나의 핀잔을 적당히 흘려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복에서 제외된 상태이자, 죄로 인한 징계나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한나가 느낀 괴로움의 본질은 단순히 서러운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는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되었는가?”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깊은 수치와 절망이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문제를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픔, 자녀 문제, 물질이나 취업, 인간관계, 혹은 영혼을 섬기는 일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아픔들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를 단순한 우연이나 누군가의 탓으로만 돌리면 우리 마음엔 원망과 낙심만 남습니다. 하지만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 삶의 아픔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히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귀 기울이게 되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됩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통곡했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브닌나에겐 저주를 퍼붓고 남편에게는 불평불만을, 더 나아가 하나님께도 원망을 쏟아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슬픔과 원망은 작아지고 주님이 주신 은혜가 하나하나씩 떠 올랐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원망 불평하는 죄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이 났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역사에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쓰임 받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은 말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고난과 아픔을 우리는 주님께 들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미사여구나 화려한 말보다 한나처럼 마음을 쏟아놓으며 통곡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사람 앞에 흘리는 눈물은 동정이나 멸시를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통곡은 거룩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씨앗이 됩니다. 예수님 역시 이 땅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응답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7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무엇보다 한나는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서원 기도는 절박함 가운데 믿음으로 드리는 자발적 약속입니다. 단순한 바램이나 부탁을 넘어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면, 나 역시 나의 삶, 소유, 자녀를 하나님을 위해 드리겠다는 헌신의 결단입니다. 한나는 만군의 여호와께 자신의 고통을 돌보시고 기억하시고 잊지 아니하여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아들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아들을 주시면 평생에 그를 여호와만을 섬기는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기도합니다. 대부분 기도는 구하는 데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원을 한다고 하여도 받은 것에 비해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리거나 받은 것 외 다른 것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한나의 기도 목적이 단지 아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잊어진 존재, 버림받은 존재가 아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고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나가 처음부터 이런 소원을 가진 영적인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또한 평범한 사람 이였기에 세상에서의 기쁨을 누리고 세상 것에 만족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문제 앞에 고통 하면서 세상 것으로 만족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정말 무엇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는 이유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었고 그 아이 또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어두운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고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와 같이 우리 각자와 공동체 가운데도 풀리지 않는 오랜 문제를 주십니다. 이 문제로 인해 브닌나와 같은 이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합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잊어진 존재로 생각 들어 정죄 받고 눈물을 흘립니다. 다들 기뻐하며 웃고 먹고 마시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어 자리를 떠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 통곡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하심입니다. 나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드시고 나를 통해 어두운 시대를 밝힐 생명을 낳고 키우도록 하시는 주님의 뜻과 사랑이 있음을 믿습니다. 문제를 통해 나의 문제를 발견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빚으시는 소망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나는 오래 기도하였습니다. 너무 오래 기도하다 보니 눈물도 마르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입술만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이를 본 엘리는 술을 끊으라 호통을 쳤습니다. 억울할 법도 했지만, 한나는 화를 내지 않고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히 쏟아놓았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엘리가 “평안히 가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듣기를 원하노라.” 하고 축복해 주자, 한나는 가서 음식을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기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맞냐고, 기도한다고 뭐가 바뀌냐고. 현실은 그대로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한나가 성막을 나설 때, 아직 현실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이는 없었고, 집에는 브닌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얼굴에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내 마음의 슬픔과 어둠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하늘의 평안과 거룩한 소망을 덧입혀 주십니다. 기도는 바뀌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나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19절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여기서 생각하신지라 말씀은 그동안 잊고 있었다가 갑자기 생각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한나를 잊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한나가 기도의 과정을 통해 영적으로 준비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진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때를 위해 기다리고 계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시고 개입하시는 순간, 우리 삶에 놀라운 응답과 반전이 시작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내가 여호와께 구하였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한나는 버림받은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 은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비천했던 자기 모습에서 회복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떠올리며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함을 통해 받은 자식이기에 서원을 기억하고 갚고자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던 시대에,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사무엘을 통해 온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고 인내하며 기도를 포기치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라는 고백이 많이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사무엘이 태어난 이후에도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은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기까지 기다렸다가 젖을 뗀 후에 제물을 가지고 엘리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평생을 여호와를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도록 드렸습니다. 젓을 땔 시기는 3~5살 정도가 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밖에 없는 그 어린아이를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을까요? 한나는 말합니다. 27절과 28절 전반절입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한나는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한 심판에 던져질 운명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정죄 받고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환난으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죽음보다 더 큰 고통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그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졌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가 영원히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의 부활하심을 통해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인생을 주님께 드렸고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에 빚진 자로서 시간과 열정과 생명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어릴 적 산에서 버섯을 따다가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길을 찾고자 헤매면 헤맬수록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길을 찾을 수 없어 죽음의 공포가 찾아왔을 때 어린 마음으로 목놓아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죽음 앞에 드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거짓말처럼 작은 길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갔을 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대학에 들어와 인생 소감을 쓰며 이 사건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그때 주님께 드린 서원 기도를 주님이 들으셨고 지금까지 생각하시고 기억하사 제 삶을 이끌어 오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 저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리셨습니다. 저는 평생 같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주셨으니 주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 가지가 부족하고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다면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은 없습니다. 주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주님만을 믿고 주님이 가신 길을 가고자 합니다. 사무엘의 이름을 주신 것 같이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요 응답받는 하나님의 종의 삶을 살아가는자 되길 기도합니다. 2장은 한나의 기도요 찬가입니다. 가장 아끼고 소중한 것을 드리면 다 잃어버린 것 같아 허전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어떠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 즐거워하며 기뻐합니다. 드렸을 때 영적인 눈이 떠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찬양합니까?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아갈 때 참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분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기쁨입니다. 한나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거룩하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넘어진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낮추시기도 높이시기도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땅의 기둥들, 세상 모든 기초가 여호와께 있기에 하나님이 모든 질서를 세우십니다. 거룩한 자들을 보호하시며 대적자들을 땅끝까지 심판하십니다.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새로운 반전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함으로 우리 삶을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며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